인간의 삶과 운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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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466회 작성일 21-09-23 11:36본문
안녕하십니까?
효봉역학연구원입니다.
이 시간에는 인간의 삶과 운명론이란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고 져 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하지만 남들과 동일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귀한 삶을 누리다 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나 고생만 계속하다 여생을 마칩니다.
왜 인간의 삶은 공평하지 않는 것이며 평등하지 않는것일까?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나쁜 환경과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후천적으로 중단 없는 배움과 노력 계산 없는 사랑 ,타협 없는 도전 항상 깨어 있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며 절대로 포기 하지 않는 정신만 살아있다면
선천적으로 좋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수행자께서 길을 가다가 한 맹인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한수행자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죄 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입니까?
수행자께서 대답하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져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기독교에 있어 인간의 운명을 철저하게 신에의해 이루어 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기독교 성서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차별된 모습과 길흉화복은
인간 스스로의 행위나 그 밖의 요건에 의해 주어지지 않고
오직 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고 이러한 신의 결정은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신이 자신이 행하는 일을 인간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라 하고
이에 따라 기독교의 삶의 태도는 당연히 자신의 운명에 대해 순응하는 자세를 취 한다고 보이며
인간은 자신의 삶이 지극히 불행하다 해도 신을 향해 반발하거나 이의를 제기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모두가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만 하고 그렇게 하면 인간은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논리나 관점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신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주장을 철저히 배격합니다.
법구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해가 서산에 기울어 가는 어느 가을 날 길을 가던 한 수행자가
앞을 보니 몸이 발가벗겨진 한 여인의 죽은
시체가 구덩이에 처박힌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수행자는 부처님을 뵙고 그 여인이 왜 처참한 모습으로 죽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한 맹인이 수행자님께 던졌던 질문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답변은 확연히 다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전생의 악행으로 산적을 만나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의 과거 생에도 여자의 몸이었는데 남편을 향한 집착이 지나쳐
질투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죽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말이 거짓일 경우 처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과오를 그렇게
받게 되었느라고 말 하였습니다.
두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기독교와 달리 불교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길흉 화복은 철저히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지은 업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고 보며 교리적으로 설명할 때 전생의 업으로 금생의 운명이 모두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생의 업은 금생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전생의 무지와 집착을 수반한 업의 조건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게 되고 그 영향을 받아
현재의 삶이 전개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운명의 주체가 당연히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 외에 그 누구도
운명을 관장하거나 좌지 우지 못 합니다.
이러한 운명론은 기독교와는 달리 인간의 삶은 순종의 태도를 취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운명을 바꾸도로 노력하라는 것이
불교에서 요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불교에서 인간의 운명은 끊임없이 변하여 미래까지 지속된다하고 자신의 말 행동 , 생각에 의해
스스로의 운명은 변화되며 그 주체는 엄연히 자기 자신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시각에서 볼 때 기독교의 운명론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할 것이며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이 어떤 인간에게만 혹독한 운명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도 불공평하다 할 것인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불교의 운명론이 더 공평하고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하고 인사드립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 뵙겠습니다.